느껴봐

올레 사랑을 만나다 - 베껴쓰기

섭짱 2014. 5. 30. 22:29

<프롤로그>

 

사람은, 존재는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운 거이 아니다. 함께 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존재들 속에서 문득 혼자인 자신을 발견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함께 있어도 함께가 아닌 것들. 사람과 말과 흰소와 검은 염소들 , 마을길과 바다와 산들, 은수자가 사막의 모래바람을 견디며, 외로움에 미쳐버리지 않고, 수십 년을 살 수 있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다. 혼자서는 결코 외로울 수도 없는 것이다.

 

-> 외롭다 외롭다 하는 건 내 주변에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많으면 많을 수록 더 외로움을 느끼는 거겠지... 그래서 내가 외롭다 생각하나...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 해 보면 그 사람들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지 그리고 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구나를 느끼게 해 주었던 구절. 그리고 내가 왜 혼자 여행을 할 때 더 외로움을 덜 느꼈을까... 하는 부분을 해소해 주기도 한 부분.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혼자 길을 떠났을 때는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이 아닐까.

 

<내안에 들어온 제주 올레>

 

길을 읽었다고 낙심할 이유가 없다. 사실 길을 잃은 것은 행운이다. 정해진 길이 아니라 나만의 올레길을 만들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으므로, 제주 한 곳에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올레길을 갖는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비밀의 길. 신비의 길

세상 얻에도 정해진 길은 없다. 올레길 또한 결코 정해진 하나의 길이 아니다. 올레길의 상징인  화살표와 리본은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일 뿐 길 자체는 아니다. 방향을 잃었을 때 화살표는 유용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길을 가두는 괄호는 아니다. 올레길 코스는 등대 같은 것이다. 등대가 내 항해의 목적지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길을 놓쳤다고 건너뛰었닥 책망할 까닭은 없다.

 

-> 처음에 제주 올레를 걸으며 화살표나, 리본을 잃어버려 당황 했던 기억이 있다. 올레는 집과 집 그리고 마을과 마을을 잇던 길이라는 걸 안 이후에는 길은 어떻게든 이어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걷긴 했지만.. 목적지는 같지만 가는 길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도 그렇다 목적한 바는 있지만 달려가는 길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그리고 누구나 걷는 길을 걷는 건 가끔 똑같은 일을 도돌이표 찍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다. 나만의 올레길, 나만의 여행길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듯 하다. 그럼 나만 아는 나만의 여행지가 될 테니까.

 

"나는 노래가 나와도 제자는 염불이 나와야 할 텐데 하면서 진광스님이 웃는다, 스님은 올레길이 중물을 쏙 빼줘서 많이 부드러워지셨단다. 진한 먹물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에 바래서 편안한 빛깔이 된 것이다. 먹물이 빠진 대신 올레길에서 만난 고운 인여에 물들고 노을빛에도 물들었다.

 

-> 올레길에 나선 비구니 스님들의 이야기. 나도 올레를 걸으며 세상에 찌든 내 색을 조금은 빼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자연의 빛에 물들고 싶다.

 

<올레 사람 사이로 흐르다>

 

여자는 그림을 그릴 때 이미지나 틀에 얽매이면 더 이상 진척이 없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럴 때는 멀ㄹ 떨어져서 캔버스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러면 그림이 잘 그려졌다 사랑도, 삶도 그렇다. 가끔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야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올레길을 걸으며 여자가 얻은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 늘 틀에 얽매여... 내것을 크게 보지 못하는데 여행을 하면서 그것이 깨진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 것을 조금 더 넓게 그리고 전체를 보려고 떠나나 보다. 

 

<사색의 숲을 거닐다>

 

일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문득문득 깨닫는다.올레길 뿐이랴, 낮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그러므로 어떠한 여행도 존재의 근원을 찾아 떠나는 구도행이 아닌 것은 없다. 움직일 기운이 남아 있을 때 자주 떠나야 한다. 모두가 여행자로 살수는 없으나 누구나 떠날 자유는 있다.

 

-> 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내 마음에 말하는 듯 하다.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여행. 떠나고 싶다.

 

[제주 속으로 들어가다]

 

어제 보목리 구두미 바다에서 팔순의 노해녀가 물질을 하다 돌아가셨다.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슬픔보다 안도감에 젖는다.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제주 사람들의 유토피아, 이어도, 물고기처럼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노인의 혼백은 이어도로 떠나고 빈 껍질만 물고기로 떠올랐을 것이다. 뭍의 노인들이 논에서 감을 매다 죽는 것처럼 제주 해녀들은 바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뭍에서는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팔순의 해녀도 바다로 가면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으니 노해녀는 마음껏 헤엄치다 떠난 것이다. 제주 해녀들에게는 바다는 끝끝내 돌아가야 할 모성의 바다, 어머니의 품, 이어도로 갔으니 노해녀의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이다.

 

-> 덤덤하게 쓴 글인 것 같은데 그 슬픔이 전해진다. 바다로 돌아간 해녀. 그리고 그것에 대해 당연하게 느끼는 제주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 작가. 아마도 이는 작가가 제주에 많이 동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 바다에서 사다가 바다로 돌아간 노해녀는 그 순간 행복했을까.

 

제주 어딘들 아니겠는가마는 모슬포는 유독 어두웠던 과거의 상흔이 깊은 곳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세력의 전쟁 시설들과 대한민국 군경의 양민학살 현장들. 그러므로 올레 11코스는 다크 올레다. 이 들판에 일제가 만든 알뜨르 비행장도 있다. 감자밭에는 흙과 잔디로 은폐된 비행기 격납고들이 산재해 있다.

 

-> 이때는 11코스 였으나 지금은 10코스, 알뜨르 비행장과 양민학살 현장들.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던 곳이다. 제주도 푸른 바다 앞에는 제주민들의 한이 담긴 곳들이 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들도. 그래서 걸으며 아팠던 길... 너른 들판에 숨겨진 아픈 과거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그래서 이곳에 올레길이 난 게 아닐까 싶다.

 

눈발은 더 굵어지고 바람도 점점 거세진다, 제주에서 가장 강력한 신은 바람의 신 영등할망이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매년 정월 서쪽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신들의 나라에서 오는 영등할망을 맞이하는 영등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바람신의 세력이 가장 강력한 2월부터 보름 동안은 누구도 배를 띄우지 않았다. 이 포구에도 영등할망이 왕림하셨는가, 갈수록 바람이 매서워진다. 제주에서는 영등할망이 왔다가는 시기에 첫 출어 날짜를 잡는 연시를 한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영등할망을 비롯한 제주 바다신들의 위세도 예전만 못하다. 신들의 비급을 엿 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신들을 맹신하거나 심방에게 목을 매지도 않는다. 오늘 성진호의 선주는 다른 배들보다 먼저 연시를 해서 출어하는 날을 점지 받았다. 그러나 선주의 눈빛에는 신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 보인다. 어쩌면 선주가 연시를 하는 것은 신들에게 의지하기 위함이 아닐지도 모른다. 뱃전에 꼿꼿이 앉은 선주는 흡사 수행자와 같다. 선주는 스스로 고행을 하며 풍어를 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중이 아닐까. 그도 아니면 선박 보험을 들었듯이 신들에게 보험 하나쯤 더 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제주도의 영등제에 대한 이야기, 이때는 바람이 센 시기라 배를 띄우지 않고 보름 내내 잔치(제사)가 곳곳에서 열린다. 제주 사람들이 신을 믿는 것은 아마도 기댈 곳이 주는 마음의 평온함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다라는 곳이 너무나 험한 곳이기에. 예전같지 않지만 지금도 제를 올리고 영등할망을 맞이하고 보내는 굿을 하는 거 보면 아마도 그런 듯 한다. 2월의 제주는 그래서 한산하고 풍요롭다.

 

과오름 숲길을 지나며 문득 산담(무덤 둘레를 쌓은 돌담)의 저 많은 돌들이 어떻게 옮겨 졌을지 궁금해 진다.

"형 산담을 쌓으려면 품이 많이 들었을 텐데 일꾼을 고용해서 쌓은 건가요?"

"아니 동네 사람들이 쌓은 거라."

"율력으로요?"

"그도 아니고 다 품삯을 주고 돌을 샀다게, 돈 대신 떡을 줬어. 담의 돌 숫자가 떡 숫자야, 떡 하나에 돌 하나."

"돌 하나에 떡 하나!"

"상주가 떡을 들고 있다가 돌 하나 들고 온 사람에게 떡 하나 주고 그랬다게."

 그렇구나, 저 산담은 단순히 돌담이 아니라 쌀로 지은 떡담이구나. 누구나 크고 튼튼한 돌담을 쌓고 싶었겠지만 그것은 집의 경제력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었다. 쌀이 귀한 제주에서 마을 사람들은 산담 쌓을 돌을 날라주고 쌀로 빚은 떡을 받아 소중한 양식으로 삼았다. 있는 집안은 큰 사남을 쌓고 없는 집안은 가족끼리 외롭게 돌을 날라다 외줄의 산담을 쌓은 것이다. 빈부의 차이는 무덤까지도 따라갔다.

 

-> 제주 여행을 하며 자주 보는 무덤과 산담, 거기에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이야. 그래서 여행에서는 그 무엇도 버릴 수가 없고, 세겨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떡으로 쌓은 돌담...... 그 크기와 높이는 부의 상징이 된 것일수도. 제주에 가면 산담을 눈여겨 봐야 겠다.

 

이들 서귀포 앞바다 섬들은 50만 년 전후로 형성됐다.화산암이지만 이 섬들은 제주 본토의 기반 암석인 현무암이 아니라 조면암이다. 50만년, 인간의 생애로는 가늠할 수 없는 시간. 대체 그 시간의 무게는 얼마쯤일까. 나그네는 문득 이 행성 전체의 무게가 궁금하다. 이 행성의 무게도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수십억년 이라는 시간의 무게가 더해진 것이겠지. 이 행성을 살다간 무수한 생명체의 살과 뼈는 흙으로 갔고 그들의 피는 강과 바다로 흘러들었다. 이 행성에서 생성되고 소멸했던 모든 생명의 무게까지 더해진 것이 이 행성의 무게일 터, 두려워라! 시간이여, 시간의 무게여.

 

-> 시간의 무게가 무섭도 두렵다한들, 잡을 수 없는 것이고, 잴 수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두려운 거겠지.

그래도 살아가는 건.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의 무게도 가늠 할 수 없지만서도.

 

범섬은 제주 창조 신화의 주요 무대이기도 하다. 제주 창조 여신인 설문대할망은 옥황상제의 셋째딸이었고 거인이었다. 할망이 치마로 몇 번 흙을 날아다 만든 것이 한라산이다. 흙을 나르던 중 터진 치마 사이로 떨어져서 굳은 것이 오름이다. 할망의 나막신에 붙었다가 떨어져 나간 흙덩이들도 오름이 되었다. 한라산이 너무 높아 봉우리를 꺽어 던졌던니 산방산이 되었다. 성산일출봉은 할망으 빨래 바구니고 우도는 빨래판이었다. 본래 우도는 제주 본섬과 연결이 되어 있었지만 할망이 한 번 오줌을 누자 흙이 쓸려나가 그 사이는 바다가 되었고 우도는 섬으로 떨어져 나갔다.

 

-> 제주도에 이런 창조 신화가 있을 줄이야, 알고 보는 제주와 모르고 보는 제주는 정말 달라고 매우 다르다. 제주에 가면 아마도 이런 내용을 되새겨 보며 풍경들을 보게 될 것 같다.